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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시절의 소년 예수

  • 설교자 : 송기성 목사
  • 본문말씀 : 누가복음2:41-52
  • 날 짜 : 2018-09-16
  • 글쓴이 : 관리자
  • 등록일 : 2018-09-16 오후 3:22:45
  • 조회 : 889

열두 살 시절의 소년 예수

2:41-52

 

2018. 9. 16

 

아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은 기독교교육진흥주일입니다. 기독교교육의 일선에서 수고하는 교사들과 교역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더욱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독교교육학자인 밀러 교수는 기독교 교육이란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것’(Christ likeness) 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Christ like person)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의 중요성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2:41-52은 열두 살 시절의 소년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 있었던 것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그것은 자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자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기독교 교육의 내실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1.절기를 지키는 경건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관례를 따라’ (as usual) 라는 말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동번역) 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을 성실하게 준행하는 경건한 예배자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율법에는 유대 성인 남자들이 연례적으로 삼대 주요 절기인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장막절)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지키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16:16). 그러나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각 처로 흩어지게 되어 이 절기를 잘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부모는 이 절기를 연례적으로 지킴으로써 소년 예수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의롭고 경건한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하였던 것입니다. 관례를 따라 절기를 지키는 경건한 부모는 그 자녀의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신앙의 모범인 줄 믿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당시 두 종류의 어머니상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였습니다. 아그리피나는 남편인 황제 클라우디오를 암살시키고 자신의 아들인 네로를 황제로 즉위시켰으나 결국은 아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모니카는 아들이 극도의 방탕 생활 속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탕자 어거스틴을 성 어거스틴이 되게 하였습니다.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반드시 위대한 부모가 있고, 그 위대한 부모의 배후에는 반드시 관례를 따라 절기를 지키는 위대한 신앙이 있습니다.

잠언22: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며 자녀들에 대한 신앙 교육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마땅히 행할 길’ (how they should live.) 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경천애인입니다. 어렸을 때 그것을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고 그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they sill remember it all their life.)

 

한번은 어느 신문사가 처칠을 위대한 인물로 교육한 선생님들을 추적하여 유치원 때 교사로부터 대학까지의 스승을 기사화 했습니다. 이를 본 처칠은 그의 일생에 가장 위대한 스승을 한 분 빠뜨렸다고 지적하면서 그 분은 바로 자기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열두 살 시절의 소년 예수께는 관례를 따라 절기를 지키는 경건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부모는 최고의 모범입니다. 기독교 교육의 성패는, 그 부모에 달려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신앙생활의 본을 보여주며 가장 존경받는 부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더 머물러 있어야 할 성전이 있었습니다.

절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무셨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그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그가 동행 중에 있는 줄 생각하고 하룻 길을 간 후에야 친척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소년 예수를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흘 후에야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말하였습니다. 그 때 소년 예수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하고 반문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성전을 내 아버지 집’ (my father’s house) 이라고 하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곧 메시야로서의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계셨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절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지만 소년 예수는 성전에 더 머물고자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년 예수에게는 더 머물러 있어야 할 성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 성전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더 머물러 있어야 할 성전은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신앙의 토대인 줄 믿습니다.

 

일제치하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한단 이유로 일본순사들이 주기철 목사님을 체포하러 갔습니다. 그 때 주기철 목사님은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미리 알게 된 한 성도가 서둘러 주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주 목사님은 설교를 중단하거나 성전을 떠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설교 중에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과 영광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 고 물으시면 내 무슨 말로 대답하겠습니까?”

설교를 다 마치시기 전에 들이닥친 순사들에게 끌려간 뒤 주 목사님은 모진 고초를 당하시다가 결국 주님을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순교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21:22에 사도요한은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하였습니다.

 

시편84:1,10에 고자 자손은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열두 살 시절의 소년 예수께는 더 머물러 있어야 할 성전이 있었습니다. 성전은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최고의 토대입니다. 어거스틴은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 (Apart from the church, there is no redemption.) 라며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것이 지고의 행복임을 경험하며 더 머물러 있어야 할 성전에 거하는 사람의 복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신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아 만났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셨습니다. 당시 저명한 율법학자들은 힐렐, 샴마어, 가말리엘, 요나단, 시므온, 니고데모 등이었습니다. 소년 예수께서 당대 최고 석학들에게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셨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놀랍게 여겼다’ (엌시스탄토)는 말은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질문과 대답을 듣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에 크게 놀라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2:3). 사실 소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비로소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시는 선생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소년 예수의 지혜는 성전에서 선생들과의 만남 가운데서 그 진리에 대해 빛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년 예수 하나님이 아들에게도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신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할 수 있는 선생들은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신앙의 관계인 줄 믿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아버지와 스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스승이 바다에서 인질로 잡혔습니다. 아들에게는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몸값이 한명 분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아들이 과연 아버지와 스승 중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탈무드에선 스승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준 소중한 분이지만 스승은 장차 나라를 있게 할 수많은 학생들을 교육할 중요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교육을 모든 분야에 있어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선생님을 국가와 사회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교회 중에 세우신 사람들을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라고 했습니다(고전12:28).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가리켜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습니다(딤후1:11). 전교인이 다 교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고전12:29). 그러나 배우는 사람은 다 될 수 있습니다. 스승 중의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8:19).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4:23).

 

열두 살 시절의 소년 예수께는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실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교사 중의 교사이신 예수님도 선생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갖고 그 지혜의 빛을 밝히 비추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사들을 신뢰하고 존경하며 배움을 통해 제자로 만들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월절 사건 이후에 소년 예수는 그 부모와 함께 내려가셔서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 그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또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소년 예수는 지혜와 키가 점점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더욱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함으로써 소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만민의 구주 메시야로서의 자기 사명에 대한 당위성을 더욱 명백히 하였던 것입니다.

 

기독교 교육, 한국 교회가 직면한 이 시대의 고민이며 난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며 책임입니다. 아예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가 날로 더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와 희망이 더욱 암울해지고 있습니다.

 

열두 살 시절의 소년 예수에게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절기를 지키는 경건한 부모, 더 머물고 싶은 성전, 말씀을 듣고 물을 수 있는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의 교육은 백년을 내다보는 인재를 양성하지만 교회와 가정에서의 기독교 교육은 영원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자녀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교육의 삼대 요소인 부모와 교회와 교사가 삼겹줄로 잘 엮어져서 우리 자신과 자녀들까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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